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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보 이슈 채널 - 위대한 포르쉐의 성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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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의 성장기

포르셰의 성장기

 포르쉐 911은 갈수록 더 강력하고 빨라졌으며 1973년에 모터스포츠 역사의 전설 중 하나가 된 카레라 rs버전이 태어났다. 쇼트 스트로크 2.7리터 엔진을 가벼운 차체에 실은 이 자동차는 지금도 수많은 자동차 평론가들에게 최고의 911이라고 칭송받는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911은 이미 스포츠카 경주의 여러 클래스에서 우승했으며 몬테카를로 랠리와 시칠리아의 타르가 플로리오 같은 유서 깊은 대회에서도 승리를 거뒀다. 프랑스에서는 특수 제작된 917 레이서들이 르망 24시간 경주의 승리를 거머쥐었으며 이 자동차들은 1970년대 초에 북아메리카의 캔암 경주시리즈에서도 수평 대향 12기 통 터보 엔진을 달고 1,000마력대의 파워를 내며 승리를 거뒀다. 포르셰 자동차들은 다른 메이커의 차들에 있어 승리하려면 넘어서야 할 산이 되었다. 936, 956, 그리고 962 모델들이 서로 영예를 놓고 싸우고 있었고 911에 기반한 934와 935는 전형적으로 자동차 경주의 출발점에 가장 많이 서는 자동차들이 됐다. 거의 20년간 F1과 인연이 없던 포르셰는 1983년에 맥라렌의 니키 라우다(Niki Lauda)와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에게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다준 TAG 터보 엔진을 설계해 엔진 메이커로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970년대 소음과 배기가스에 대한 규제가 엄해지며 911의 시대도 끝이 보이는 듯했고 포르셰의 수장 에른스트 푸어만 (Ernst Fuhmann)은 엔진을 전방에 설치한 수랭식 차로 옮겨 가기를 열망했다. 그러나 V8 엔진의 928과 엔트리 카 (entry-level car)엿떤 824(나중에 944와 968F로 개발)는 포르셰 열성 팬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팬들은 계속 911에 열광했다. 1975년의 911 터보는 당대에 가속이 가장 빠른 자동차의 하나로 이름을 날렸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원조 911의 궁극의 후속작은 트위 터보, 4륜 구동의 959가 됐는데,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겨우 200대만이 프로토타입으로 생산됐다. 신세뎨 911 모델은 1989년에 소개됐고 그 후 20년간 3번의 세대교체가 있었다. 저마다 바로 전 모델과 비슷해 보였지만 언제나 새로운 기술과 더 나은 성능을 보여줬다. 19990년대 초 포르셰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잇기는 했지만 돈을 많이 벌지는 못했다. 결국 포르쉐는 전방 탑재 엔진 자동차들은 포기하고 포르쉐는 더 젊은 새 고객들을 위해 엔트리 카로 미드 샵 엔진 로드스터인 박스터를 개발했다. 이후 폭스바겐과 손을 잡고 개발한 대형 SUV가 카이엔(Cayenne)으로 라인업을 확장했다. 카이엔 SUV가 연료를 불필요하게 과도하게 소비한다는 환경 보호란자들의 지적에는 전기와 하이브리드 사양으로 대처했다. 2009년 포르셰와 폭스바겐 사이에 지배 지분을 둘러싼 쓰디쓴 분쟁이 절저엥 이르렀다. 포르셰는 폭스바겐의 지분을 50퍼센트 이상 늘렸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한 빚을 졌고 완전 인수에 충분한 자본을 모으지 못했다. 포르셰가 빚을 감당하려고 애쓰는 사이, 폭스바겐은 양사의 합병을 위한 협약을 2011년에 도출해 냈다. 그 결과 포르셰는 폭스바겐 그룹의 열 번째 브랜드가 됐다.